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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선사시대

한국사] Marx의 유물사관을 통한 선사의 개괄적 이해

by 가영_GaYeong 2022.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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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선사시대를 직역하면 기록 이전의 시대, 즉 기록이 없는 시대를 뜻한다.

선사시대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로 구분한다.

청동기, 철기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사에서는 철기까지 선사시대로 배운다.

 

 

Marx의 유물사관

유물사관은 한계가 많은 역사 이론이긴 하나,

선사시대나 조선시대는 유물사관으로 공부하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좋다.

 

유물사관: 역사(사회) 발전은 원동력은 '물질'에 달려있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자인데 역사를 발전하는 원동력이 물질에 있다고 보았다.

오직 물질로 역사를 바라본 것.

 

마르크스는 사회구조가 상부하부로 나눠져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주로 상부에 해당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이다.

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을 만드는 것이 하부 구조인데 

하부구조를 생산력, 생산 관계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구석기 때 생활한 인간과 신석기 때 생활한 인간은 생산력이 다르기 때문에

생활 모습이 다르다고 보았다.

신석기 때 농사가 시작되면서 생산력이 달라졌고, 생활모습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유물사관을 통한 선사의 개괄적 이해

구석기인들은 주로 사냥, 채집, 어로를 통해 먹고 살았다. 사냥, 채집, 어로를 자연 경제라 한다.

사냥, 채집, 어로는 짐승은 못 하는데 사람만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다.

즉, 짐승과 비슷한 생산력을 가졌으므로 짐승과 비슷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마르크스 유물론에 의해.)

 

그래서 무리를 이루고 먹을 것을 찾아, 따뜻한 곳을 찾아 이동생활을 했을 것이다.

 

또한 구석기 시대 때부터 주술적 신앙이 시작되었다.

동굴같은 곳 보면 벽화가 막 그려져있다.

본인이 먹고 싶은 것. 사냥 기원 등등

이런 것들이 다 주술적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 때 농경 목축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신석기인들이 주로 농경과 목축을 했다하면 크나큰 오산.

아직도 신석기인들은 주로 사냥, 채집, 어로를 했다.

오늘부터 신석기니 농경과 목축을 하겠다! 라고 외친 게 아니라는 것,

지금 농부와 어부들이 신석기인이 아니 듯이, 사냥, 채집, 어로를 한다고 구석기인이 아니다.

 

농경은 주로 조, 피, 수수를 위주로 되었다. (벼농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는 탄수화물 함량이 별로 없어서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다. (병아리 모이)

벼만 먹고는 살 수 있지만 조만 먹고 살수 없다.

그래서 사냥, 채집, 어로의 비중이 줄지 못했다. 

 

농경과 목축이 시작 되면서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이동 생활을 하며 농경과 목축을 하지는 못 한다.

주로 강가바닷가 근처에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농경을 하면 채집의 비중이 줄어들고, 목축을 하면서 사냥의 비중을 줄였다.

하지만 어로의 비중을 줄일 수는 없으므로,

강가나 바닷가 근처에서 어로는 계속 이어갔다.

즉, 신석기 인들이 선택한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그곳에서 산 것이다.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씨족사회가 형성된다.

편한 사람끼리 모여 살았을테니 씨족사회가 되는 건 당연하다.

청동기 때 생산이 시작된다.

벼가 생산이 되면 이제 먹고 남는 것들이 생긴다.

배가 많이 불러오기 때문에.

이런 남는 것들을 잉여 생산물이라고 한다.

그러면 지금 시대와 같이, 본인이 모으는 잉여 생산물이 제각기 다를 것이다.

사유재산이 생기고, 빈부 격차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계급이 나올 것이다.

계급이 생겼다는 것은 가진 자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 생겨난다. (현대 법과는 다르다.)

이 법을 집행하려면 집행하기위한 기관이 필요하다.

공권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국가가 형성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벼가 생산되므로서 전쟁이 나오기 시작한다.

뺏을 수 있는 재산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복 전쟁으로 부족간 통합이 이루어지고, 군장 국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부족간 통합 과정에서 선민사상천손사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전쟁은 패자나 승자나 잃는 것이 많다.

하지만 선민사상과 천손사상으로 전쟁없이도 부족을 통합할 수도 있고,

전쟁을 하더라도 패자 입장에서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면 내가 진 부족은 하늘의 자식이니까.

즉,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잉여 생산물의 발생으로 남녀 분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구석기, 신석기 때는 모든 사람이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잉여 생산물로 분업이 가능해졌다.

남 녀 모두 일을 하는 것 보다,

남자만 밖에서 사냥이나 농경과 같은 일을 하고

여자는 애를 키우거나 남자가 일을 할 수 있게 밥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남자가 하는 일이 많아지고, 여자는 거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청동기 때부터 가부장적 모습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또, 벼농사가 시작되면서 야산이나 구릉 지대로 거주지가 옮겨진다.

야산이나 구릉 지대는 따뜻하기 때문이다. (배산 임수) (참고로 풍수지리와는 관련이 없다. 이때까지는 풍수지리설이 들어오지 않았다.)

 

청동기 시대라고 농기구가 청동기인 것은 아니다.

청동기는 귀한 재료이기도 하고, 무른 소재라 농기구에 쓰기는 부적합했다.

철기 시대에 철제 농기구가 등장했다. (철재 보습이나 깊이 갈이가 나왔다.)

철제 농기구를 쓰면서 생산력이 증대했다. 즉 역사가 발전했다.

또한 연맹 왕국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중국과 본격적 교역이 시작되었다.

중국과 교역을 했다는 증거로 명도전, 오수전, 반량전, 다호리 붓이 발견되었다.

철기 부터는 다른 나라와 교역을 할 정도로 생산량이 많아진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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